예사랑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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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11, 개정)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바라봄과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이 바라는 바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분명 왕이시지만 그가 모든 것 위에 세우심을 입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시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과정을 생략한 어떤 결과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고 이었던 것이다. 이런 길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전혀 다른 길이며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 또한 하나님의 마음과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한 것이니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이 영에 있지 육에 있지 않음을 우리가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주님은 지금 나귀를 타고 만왕의 왕으로서 입성하신다.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아심에도 피하려 하지 않고 이일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시려 담담히 나아가시고 있는 것이다.

누군들 피하고 싶지 않을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이 땅을 살아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이 땅에서 이루시려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육은 무익하다는 주님의 음성이 내 맘에 항상 있음에도 육의 것들이 주는 매력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연약함을 본다. 사단이 휘두르는 물질의 위력에 흠칫 놀라며 슬그머니 변질되는 내 모습을 본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결코 이 세상에 속한 물질이 주는 화려함에 있지 않음에도 이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앙이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내 마음이 주님의 눈길이 머무르는 곳에 가 있기를 원한다.

주님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감으로 주님의 보호를 떠나지 않기를 원한다.

 

주께서 쓰시겠다.”

이 한마디의 말로 자신의 소중한 재산이었던 나귀를 주님께 드린 헌신을 보게 하신다.

머리로만 주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쓰심에 항상 준비되어 말씀하실 때 자신을 드려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믿음이 아닌가?

삶의 일상 중에서 시시때때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우리가 순종치 못하는 일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유들은 이기적이고도 자기 중심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닌가?

정말 주님이 내게 말씀하심을 믿는다면 나귀의 주인처럼 자신을 드리지 않을까?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는 축복을 얻게 된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고 호산나 찬양하며 따랐지만 고난 앞에 서 있는 주님에 실망하고 돌아서서 폭도로 변해버린 것은 이들의 믿음이 얼마나 허상이며 자기 욕망에 붙들린 것인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귀의 주인은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려 헌신함으로서 그의 믿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귀가 소중해서 그의 믿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소중한 것이다.

내가 지금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계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에게 아직 주님이 아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주님이라면 오늘 나는 종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입술로는 이렇게 부르짖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주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어줄 도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는 예수를 그들은 십자가에 달아 죽인 것이다.

다윗의 나라를 회복한다는 것은 이 세상 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룸으로 세워지는 영원한 다윗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 내 안에 이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고 나의 주요 왕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겸손히 경배 드리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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